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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의
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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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성들은 16세기
경부터, 영국의 여성들은 18세기 들어서야 처음으로 가랑이 팬티의 기원인 드로우즈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의 여성들은 그들의 겉옷인 사리 속에 페티코트 이외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여성들의 한복에도 팬티는 없습니다. 속저고리, 속곳과 같은 것을 착용하긴
했으나 그것은 특정 계급만을 위한 옷일 뿐 대중적인 속옷은 아니었습니다. 간혹 속바지나
고쟁이, 전통적인 반바지인 베잠방이를 속옷 혹은 팬티라고 주장하는 견해 역시 아낙네들이
속바지나 고쟁이 차림으로 들에 나가 일했던 것으로 보아 그것이 속옷이 아니라 겉옷의
한 종류인 작업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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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의
변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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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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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기계화된 방적기와 직기의 출현, 합성섬유와 합성염료의 개발은 의상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戰後의 경제적 타격으로 인한 복장혁명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그 근원부터 바뀌었습니다.
즉 전쟁에 나간 남자를 대신하여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대량 진출함에 따라 콜셋, 크리노린스커트,
바슬패드, 페티코트, 화려한 레이스나 자수 등 장식적인 것이 사라지고 사회적 시대적
감각에 부합되는 기능적이고 단축화 되는 경향으로 되었습니다. 20c초기에 속옷의 소재가
거의 면제품이었지만 綿火藥을 만들기 위해서 면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어 부족했으므로 絹으로
대치되었습니다. 絹으로 된 속옷이 유행했으나 絹은 황변하기 쉬웠으므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핑크나 시몬핑크색으로 염색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색깔있는 속옷이 널리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콜셋이나 브래지어, 페티코트등은 나일론, 레이온과 같은 인조섬유로 제작되었습니다.
슈미즈는 직선적으로 어깨끈이 달린 단순한 형식이며 천은 부드러운 薄布綿(nain sook)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드로오즈의 단을 아래에 꼭 맞게 재단하여 단에 레이스장식을 하였으며
絹과 프란넬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판타롱은 속옷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페티코트는
통형의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거들을 단 콜셋은 20C초기부터 일반화되고 거들은 고무천을
새틴천으로 싸서 바느질한 것으로 그 끝에 고리로서 金도금한 클립이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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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초기
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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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셋이 콤비네이션이나 드로오즈 위에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콜셋은 직선적인 형을 만들기 위해 다아트도 될 수 있는 대로 작게 하고 몸통의 압박을
적게 하기위해 딱딱한 것 대신 신축성 있는 천을 허리에 삽입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콜셋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자 상부는 차차 내려오는 경향으로 되어
허리만의 콜셋이 등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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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
들어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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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적으로 발전된 속옷중의 하나가 브래지어이입니다.
브래지어는 원래 콜셋의 상부가 유방을 눌러서 안정시키고 있던 것을 위로 연장시키는
작용을 더하고자 하는 데서 생겨났습니다. 콜셋에서 분리된 유방지지구(乳房支持具)의
최초의 형태는 '볼스타'였습니다.
19C 중엽에 바스트를 불룩하게 하고자 한데서 생겨난 것이 '바스트 임푸루버'였습니다.
레이스를 사용해서 장식한 바스트바디스(bust bodice)라는 개량형도 나타났는데
이것을 '바스트거들' (bust-girdle)로 칭했으며 어깨끈이 없었습니다.
1914년경에 부드럽고 짧은 브래지어가 개발되었는데 후에 '커레세 크로쉬' (Caresse
Croshy)로써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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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년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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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끈이 있는 브래지어가 나타났으며 1927년에는 두개의 둥근캡으로 된 폭 좁은 브래지어인
'밴도우' (bandeau)가 나타났습니다.
1935년에 미국의 Warner Bros에서 최초로 꼭 맞는 캡을 고안하였고 네 종류의
캡 크기는 1940년대까지 주로 영국에서만 애용되어졌습니다.
1938년에는 끈 없는 '브라' (Strapless bra) 가 도입되어 50년대에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와이어브라(Wire bra)도 이때에 나타났으며 최초로 심을
댄 브라(Padded bra)가 30년대 중반에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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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년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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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론, 라이크라. 스판텍스와 같은 합성섬유가 대중화되면서 원피스 모양의 사이즈에서
상,하의가 분리된 비키니 타입의 섹시한 속옷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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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
년대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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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과 저항문화, 미니스커트의 붐으로 인해 몸의 노출이 확대되었는데 이 시기 여성들의
몸매를 조이던 과거의 코르셋, 브래지어, 거들은 공개 화형식을 당했으며 노브라는 여성
해방의 상징물로 인식되었습니다.
팬티 역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으며 단순한 가리개로 그 역할이 고정, 어떤 면에선
노팬티 지지자들로 인해 팬티가 다시 사라지는 듯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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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년대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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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특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새로운 페미니즘의 풍미와 맞물려 새로운 팬티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패션계에 불어닥친 복고풍의 영향으로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팬티나 관능적인
란제리들 이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손에 의해 재해석되었습니다.
뉴욕의 캘빈 클라인을 선두로 이브 생 로랑, 지방시 등 프랑스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독창적인 언더웨어 컬렉션을 세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또한 속옷 느낌의 소재와 디자인을 겉옷화한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1988년 순회공연에
나선 팝 스타 마돈나의 의상을 디자인함으로써 겉옷으로서의 란제리를 대유행시켰습니다.
원뿔 모양의 브래지어와 거들 팬츠 차림으로 라이브 무대를 누비며 노래하는 마돈나의
노골적인 섹시 패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란제리 룩의 신화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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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의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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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형태의 팬티의 역사는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짧은 시기에 팬티가 급속도로
유행, 보급되었습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더이상 축소할 수 없는 크기의, 성기만 가리는 천으로까지 한된 이색팬티까지
등장한 지금은 팬티 탄생이래 최대의 절정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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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중 일부는 경상대
김주애씨의 석사학위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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